장소는 기억을 담는 그릇이다

2019.11.05 177

통의동 보안여관  대표 최성우

장소는 기억을 담는 그릇이다

 

2007년 경복궁 옆에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 보안여관. 이름은 낯설고 그 안에 벌어지는 전시와 이벤트들은 수상했다. 지은 지 80년이 넘은 여관 곳곳에 쌓인 역사를 간직한 채 이곳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시도들은 도시와 공간에 대한 많은 질문을 던진다.






‘과거의 것을 현재로 불러들여 또 다른 이야기와 문화를 탄생시킬 수 있다.’ 추억과 역사가 거부되고 있는 도시 안에서 지난 2007년 서촌에 문을 연 보안여관이 던지는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이곳의 최성우 대표는 태어난지 80년도 더 된 이 낡은 여관에 켜켜이 쌓인 사연과 세월의 먼지를 털어내지 않고 현대의 삶과 예술 속에 소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보안여관을 도시재생의 모델로만 보지 말아 달라고 말하지만 도시재생이라는 말도 없던 시절 이뤄진 그의 시도는 도시재생의 중요한 사례로 통한다. 그에게 보안여관의 역사와 가치, 도시와 장소에 대한 생각들을 들어보았다.


 

최성우가 서촌으로 간 까닭은
2007년 가을 서촌에 발을 디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우주의 시계가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과대망상증 아니냐고 하는데(웃음) 사실 나는 오래 전부터 꿈꿔온 문화예술 공간을 만들기 위해 사대문 안을 2년 동안 돌아다녔다. 서촌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인사동과 삼청동은 상업화가 깊이 진행되어 있었고 평창동과 부암동은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원했던 나의 바람에 부합하지 않았다. 결국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고스란히 품은 서촌에 끌렸다. 겸재 정선이 그린 한양 그림의 대부분이 서촌이고 이곳 송석원(松石園)에서 조선의 지성인들이 예술과 정취를 논했다. 세종대왕이 태어났으며 안평대군은 비해당이란 별장을 지었다. 근대에도 이상과 구본웅, 박노수, 천경자, 이상범의 집과 작업실이 모여있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보안여관 문을 열 때 이전엔 거의 없던 문화예술공간과 근사한 음식점, 카페들이 서촌에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섰다. 우주의 시계가 움직였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BOAN1942와 보안여관







상량문에 쓰여 있던 소화 17

처음 건물을 매입했을 때 보안여관의 문화와 역사성을 잘 몰랐다. 심지어 여관인 줄도 몰랐다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옛 간판을 발견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비가 와 보수를 하는 과정에서 천장 상량문을 발견했다. ‘소화(昭和) 17 53이라고 적혀있었다. 1942년이었다. 보통 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큰일 났다싶었다(웃음). 2004년까지 여관으로 사용되었으면서도 보안여관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후에 이곳에서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옛날 이곳에서 주무셨다는 어르신들이 큐레이터들을 붙들고 각자의 추억을 들려주었다. 서정주 선생 이야기도 그 와중에 알게 되었다. 그의 자서전에 ‘1936년 가을, 함형수와 나는 둘이 같이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데서 기거하면서 김동리, 김달진, 오장환 등과 함께 <시인부락>이라는 동인지를 꾸며내게 되었다라는 문구가 있던 것이다. 상량문에 쓰여진 숫자보다도 6년이나 앞선 기록이었다. 단순히 오래되기만 한 여관이 아니라 80년 동안 중요한 인사들이 거쳐가며 사연을 남긴 공간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된 것이다.

 



80년 전 신여성의 맞선 장소

도대체 여기 누가 머물렀을까?’ 보안여관을 운영하면서 나는 이것이 가장 궁금했다. 많은 이들을 인터뷰하고 탐문하다 1940년대에 이곳에서 맞선을 봤다는 분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보게 되었다. 그 할머니는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라는 책을 내고 인터뷰를 한 것인데 기사 중 보안여관이라는 글자가 눈에 쏙 들어온 것이다. 그 길로 할머니가 계신 인천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어느 신여성의 인생에 걸친 러브 스토리와 그림 솜씨를 알게 되었다. 반드시 보안여관에서 그분의 전시회를 열겠노라 다짐했는데, 2년 뒤 돌아가셔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보안여관 역사상 최고의 오점이라고 생각할 만큼 안타깝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은 과거 문화공보처에서 일할 때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기 위해 통금 시간이 지나면 보안여관에서 밤새워 연설문을 썼다고 한다. 장소는 기억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완전히 지워진 사연들을 발견해 나가면서 소름이 돋기도 하고, 기쁨과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보안여관의 기획전시



  카페&바  ' 33MARKET'  



게스트하우스 '보안스테이'




허름하고 낡은 여관에서 청년 작가들이 뻘짓을 하더라

미술관과 박물관은 세상의 1퍼센트에 주목하지만 우리는 나머지 세상에 주목한다는 것이 보안여관의 방향이었다. 이에 맞춰 다양한 전시와 문화 행사를 열었다. <먹는 게 예술이다, >이라는 전시를 통해 토종 쌀을 전시했고, 도시농부, 지역주민, 아마추어 장인이 주인공이 되는 ..아 프리마켓벼룩시장을 열기도 했다. ‘예술을 파는 구멍가게’, ‘통의동 예술포차등을 통해서도 좀 더 삶에 가까운 예술을 선보였다. 때문에 초창기엔 낡은 여관에 젊은 친구들이 와서 뻘짓한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 보안여관이 다른 복합문화공간과 다른 점은 컨셉트다. 특히 기존 건물 바로 옆에 세운 5층짜리 보안1942’는 카페와 서점, 갤러리, 게스트하우스로 꾸몄다. ‘먹고, 자고, 읽고, 보고, 걷고라는 5가지 삶의 형태를 이 공간에서 실천해보고 싶었다.



과거를 현재로 소환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다

우리의 현대사는 땅에 흐르는 시간과 기억, 장소에 흐르는 이야기를 지우는 데 매우 능수능란한 시대였다. 고밀도, 고효율, 압축 성장을 위해 장소를 지웠고, 동시에 기억을 지웠다. 장소는 어쨌든 기억을 담는 그릇이다. 그 기억이라는 것은 사람의 기억인데, 하나의 장소가 없어진다는 것은 기억이 소멸된다는 거고, 사람의 역사가 사라진다는 의미다. 보안여관 역시 그렇게 될뻔했지만 과거를 현재로 소환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냈다.




보안책방


 

보안클럽



최성우가 생각하는 도시재생은

사람들은 보안여관이 도시재생의 우수 사례라고 하고 나를 도시재생 전문가로 여긴다. 하지만 내가 2007년 보안여관 문을 열었을 때는 도시재생이라는 단어도,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도 없었다. 보안여관을 도시재생의 사례로 부르는 것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 도시재생이라는 화두를 통해 도시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이 생겼다는 점은 매우 놀랍다. 다만 시간을 가지고 좀더 천천히 이뤄나가면 좋겠다. 도시재생이 필요한 지역은 그만큼 오랜 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인데, 재생을 하려면 그 잘못된 기간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서두르지 말고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또 한 가지, 큰 지역 단위의 도시재생보다 하나의 작은 거리 또는 동네에서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좋다. 그렇게 되면 그 주변 지역 도시재생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URBAN SALON

어반살롱은 로컬크리에이터를 통해 도시재생의 다양한 담론과 영감을 공유하기 위한 문화 프로그램입니다. 지난 1026() 서울도시재생이야기관에서는 네 번째 어반살롱이 열려 , 시간, 기억, 장소 그리고 문화라는 주제 아래 보안여관 최성우 대표의 강연이 펼쳐졌습니다. 이번 인터뷰 기사는 최성우 대표의 어반살롱 강연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힙니다.  



| 김태희

사진 | 전문식, 보안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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