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 도시재생기업(CRC), 협동조합 우리들의 낙원

2021.10.13 894





서울 도시재생기업(CRC), 협동조합 우리들의 낙원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낙원 




우리의 살길은 ‘공존’이라는 합의를 이루고, ‘악기’라는 자신들만의 콘텐츠로 지역과 상가의 역사성을 지키고 싶다는 협동조합 우리들의 낙원. 상인과 지역이 상생할 수 있는 좋은 CRC 모델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이들을 만나보았다.

※ 도시재생기업(CRC) ‘Community Regeneration Corporation’의 약자로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설립된 단체(법인)가 중심이 되어 다양한 지역 문제를 해결하며, 지역에 필요한 서비스를 생산, 공급하는 기업





(위 사진)  협동조합 우리들의 낙원 조합원들. 왼쪽부터 상인회 부회장인 엔젤음향 장민선 대표, 유일뮤직 유강호 대표, 대일건설 은동기 사원



낙원상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번화한 도심이었던 종로에서 음악의 메카로 군림해왔지만 도심 상권이 외곽으로 이동함에 따라 오랫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자 상인들은 스스로 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상인회, 건물 운영자, 홍보회사가 힘을 합쳐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지난해에는 ‘우리들의낙원’이라는 이름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해 서울 도시재생기업(이하 서울CRC)에 선정되었다. 상인들이 주체가 된 도시재생기업으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협동조합 우리들의 낙원’ 이야기를 협동조합 유강호 이사에게 물었다.




Q. 먼저 협동조합 우리들의 낙원의 설립 배경을 이야기해 주세요
1980년대만 해도 낙원상가는 음악의 메카였어요. 꼭 악기 구입을 하지 않더라도 뮤지션들이 일자리를 찾아 모였지요. 하지만 ‘밴드음악’ 시절이 끝나고 2000년대 들어 온라인 쇼핑이 성행하면서 많은 업체들이 위기를 맞았어요. 도심 상권도 쇠락해갔고요. 2010년 들어서서 상인회를 중심으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낙원상가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기 위한 여러 방법을 모색한 것이죠.
 


Q. 이윤 추구를 생각하면 더 번화한 곳으로 이전해도 됐을 텐데요
낙원상가 상인 대부분은 수십 년간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왔어요. 대를 이어 사업을 하는 업체도 꽤 있고요. 무엇보다 우리는 ‘음악’이라는 공통점으로 한 공간에 모여 있잖아요. 함께 하는 시너지가 훨씬 크지요. 상가의 건물주이자 관리를 맡고 있는 ‘대일건설’과 브랜딩 전문 회사 ‘신시아’가 도와서 낙원상가 살리기에 나섰어요. 상인들의 삶과 꿈을 콘텐츠로 만들고, 상인들의 재능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지요. 상인들 역시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을 시민에게 돌려주자’면서 재능기부에 흔쾌히 나섰고요.



Q. 구체적으로 낙원상가에서 어떤 사업들을 진행했는지 궁금합니다
5년 전부터 상가에서 자체적으로 악기나눔 캠페인, 플리마켓, 반려악기 캠페인 등을 진행해왔습니다. 악기나눔 캠페인은 시민들이 사용하지 않는 악기를 서울시교육청이나 서울시에 기부하면 우리 상인들이 모두 수리해서 악기가 필요한 곳에 전달하는 사업이에요. 지금까지 1만여 점의 중고 악기가 낙원상가에서 새 악기로 변신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달됐지요.


또 반려악기는 누구나 1인 1악기를 연주하자는 캠페인이에요. 피아노나 바이올린처럼 전문적인 악기가 아닌 쉽게 배울 수 있는 우쿨렐레나 칼림바 등을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게 하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지요. 낙원상가의 오랜 고객인 뮤지션들이 앞장서서 SNS에 자신의 반려악기 연주를 들려주고, 상인들이 매장을 찾은 손님들에게 연주법을 알려주기도 했어요.

 




   

낙원상가는 악기 구입뿐 아니라 청음, 조율, 수리 등 악기 관련 총체적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Q. 이미 자발적으로 상가에서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을 진행해왔는데, 협동조합을 만든 계기가 있을까요?
5년간 사업을 하다 보니 사업 확장에 한계가 왔어요. 낙원상가를 대표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았으니까요. 상인회는 친목 단체일 뿐이고 특정 업체를 내세울 수 없었죠. 그러다 보니 행정적 문제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서울시교육청과 악기 나눔 캠페인을 진행해왔는데 참여 업체를 하나로 묶을 만한 대표 기구가 없다 보니 행정처리가 복잡했어요. 그러다 보니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임에도 재능기부 차원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죠.



Q. 현재 협동조합 구성원은 어떻게 되나요?
상인들을 대표해 저와 상인회 부회장이 이사로 있고, 대일건설에서 2명, 신시아에서 1명이 협동조합 이사로 있어요. 대일건설은 상가의 건물주로 건물 및 상가 운영 관리를 맡고 있어요. 도시재생 사업에 필요한 공간을 제공하고 협동조합에 필요한 것들을 관리해주고 있지요. 신시아는 브랜딩 전문가에요. 협동조합 설립 이전에도 ‘우리들의 낙원’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홍보했지요. 우리들의 낙원 협동조합이 CRC로 거듭나도록 도왔고, 현재는 도시재생 코디네이터 역할을 자처해 지역과 공생할 수 있는 사업의 밑거름을 만들어주고 있어요. 




 





지난 5년간 낙원상가 살리기의 일환으로 진행해온

악기나눔 캠페인, 반려악기 캠페인, 낙원감사제 행사 장면




Q. 2020년 8월 서울 CRC로 선정됐는데, 낙원상가는 도시재생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구도심에 위치한데다 건물 자체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늘 재개발 이슈가 있었어요. 2007년경에는 인근 세운 상가처럼 상가 이전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고요. 하지만 건물 등급 평가에서 낙원상가는 매년 B등급이에요. 튼튼하게 지은 건물이고, 관리도 잘 되고 있고요. 게다가 빌딩 안에 악기상가뿐 아니라 영화관, 시장, 아파트 등의 여러 주체가 있어 복잡한 구조예요.


재개발로 모두의 요구를 충족시킬 만한 뾰족한 방법이 없는데다 재개발로 이전한 다른 상가들의 결과를 보니 역시 재개발은 좋은 대안이 아니었죠. 대일건설과 상인들 사이에 ‘우리의 살길은 공존’이라는 합의가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악기’라는 우리만의 콘텐츠로 지역과 상가의 역사성을 지키고 싶었고요. 그러던 중 작년 도시재생 토론회에 참석하면서 상인회가 해오던 프로젝트들의 수익 구조를 잘 만들면 지역과 공동체가 상생할 수 있는 좋은 CRC 모델이 될 것이라는 청사진을 얻게 됐죠.




Q. 센터에서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들었어요. 도움이 됐나요?
협동조합 설립 전, 서울시 도시재생지원센터의 4step 프로그램을 통해 CRC 사례 탐방, 사업계획서 쓰기 등 여러 교육을 받았어요. 애초에 상가 공동체가 해오던 사회적 사업을 확대하자는 정도로만 시작한 도전이었는데, 교육을 받으면서 시야가 넓어졌다고 할까요? 상가뿐 아니라 지역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한다는 점이 색다르게 다가왔지요.


또 우리 구성원은 30~40년간 사업체를 운영해온 상인인지라 각자의 사업 노하우가 있어요. 그런데 CRC 사업 구조는 일반 영업장이랑 다르더라고요. 체계적인 회계관리와 예산관리를 배웠고, 이익을 재투자하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해 선순환하는 시스템을 알게 됐습니다. 얼만큼의 이윤을 창출하고, 재투자하고, 환원해야 하는지 계속 배우고 논의하고 있습니다.


4step 프로그램이란?
서울 도시재생기업(CRC)이 지역재생에 기여할 수 있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성장과 자립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CRC멘토링, 긴급출동 CRC 119, CRC 홍보 및 판로개척, CRC 기업간 연대 등 4step에 따른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
  



  



낙원상가 상인회 회장을 역임한 후, 협동조합 우리들의 낙원을 설립한 유강호 이사





Q. 협동조합 우리들의 낙원이 기대하는 ‘지속가능성’은 어떤 것일까요?
코로나19로 경기가 어렵고 불안한 상태에서 많은 업체가 폐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현재 상가 내 업체가 198개인데, 직원과 건물관리팀까지 더하면 낙원상가에서 일하는 이가 천 명이 넘어요. 이런 상황에서 악기 나눔 캠페인이 악기업체의 새로운 수익 모델이 될 수 있어요. 언제든 AS가 가능한 오프라인 매장의 특성과 오랜 경력의 노하우가 낙원상가만의 장점이고요.


지금까지 서울시교육청, 함께걷는아이들, 장애인복지회 등과 사업을 진행해왔는데, 낙원상가 이름을 내걸고 본격적으로 중고 악기 수리 사업을 하면 많은 업체들이 폐업 위기를 막을 수 있겠지요. 또 악기 나눔 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을 업체들이 골고루 혜택받을 수 있도록 분배합니다.


  
Q. 서울CRC로 선정된 후, 협동조합이 새롭게 시작한 사업도 있을까요?
캠페인으로 해오던 ‘반려악기’ 사업을 확장해 온라인으로 공동 판매에 나설 생각입니다. 이미 네이버스토어와 카카오 등에 매장을 꾸리고 품목을 올릴 준비를 마쳤어요. 악기 전문가로 가득한 낙원상가를 앞세워 생활 속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악기들을 추천하고, 상인들이 직접 악기의 조력자가 되는 것이지요.


‘악기공유’ 사업도 새로 시작했어요. 최상급 악기를 아마추어 뮤지션에게 빌려주는 렌탈 사업이죠. 예를 들어 베이스 기타 중에 ‘포데라’라는 브랜드가 있어요. 굉장히 값비싼 명기죠. 이를 직장인밴드나 대학생들에게 1~2주 실비로 빌려주려고 해요. 일반 수입업체에 비해 판매와 수리 등의 네트워크가 잘 되어 있으니, 소비자에게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악기를 대여해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낙원상가 2층에 마련한 청음 공간





‘악기나눔’ 사업의 수리 및 보관이 이뤄지는 지하 1층 공간




Q. 성공적인 도시재생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협동조합의 숙제는 무엇일까요?
대일건설에서 상가 내에 협동조합을 위한 공간 두 개를 마련해줬습니다. 2층 상가 입구에 있는 청음 공간과 지하 1층에 있는 수리 공간이지요. 시민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전체 상인들을 조합원으로 끌어들이는 일이지요.


악기 상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 안에서도 업체들이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있어요. 현악기, 관악기, 피아노, 음향 등 4~5개 악기 종류에 따른 모임이 있고 그 안에서도 연령대별, 취미별로 사조직이 많아요. 이들에게 각자의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도록 협동조합의 목표와 역할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라 봐요.  
 


Q. 마지막으로, 협동조합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도시재생은 같이 살기 위한 방법이에요. 코로나19로 음악업계는 굉장한 타격을 입었어요. 앞으로도 악기 업계에는 계속 부침이 있겠지요.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은 음악이 생활 속 문화로 자리 잡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이는 모든 업체가 합심해서 음악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많은 소비자가 이에 공감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악기나눔, 반려악기, 악기공유 등 우리가 진행할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악기 상가가 되살아나면 지역 상권도 살아날 거라고 확신해요. ‘우리들의낙원 협동조합’이 음악을 통해 만들어나갈 선순환을 기대해주세요.



협동조합 우리들의 낙원
사업지 창덕궁 앞 도성 한복판(종로구 낙원상가)
설립일 2020년 8월 20일
조합원 2021년 4월 현재 5명(상인회 2명, 대일건설 2명, 신시아 1명)
CRC 유형 지역사업형 CRC
주요 사업 공공시장 악기 공동판매, 악기대여, 반려악기 체험 프로그램, 악기나눔, 낙원상가 로컬굿즈(뱃지, 폰스트랩, 마스킹테이프 등) 개발 및 판매


해결하고자 하는 지역 문제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음악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만들기

해결 방법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_ 기존에 진행하던 악기나눔 캠페인 및 반려악기 수익 창출, 악기공유 사업 시작.  
음악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만들기_건물관리 업체, 상인회, 홍보회사가 힘을 모아 만든 프로그램들로 악기에 대한 시민들의 문턱 낮추기



글_원영인(빈빈)
사진_박상국(일오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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