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윤찬영 현장연구센터장_ 소프트웨어가 공간을 살리고 공간이 도시를 바꾼다

2022.06.07 631

직접 공간을 꾸미고 있는 개복동 작업 모습  

photo by ⓒ조권능





소프트웨어가 공간을 살리고_  공간이 도시를 바꾼다



"공간만이 힘이 센 시대는 지났다."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곳을 무엇으로 채우는가에 달렸다."





윤찬영 현장연구센터장(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사람들이 떠난 도시는 활력을 잃는다. 빈집과 빈 가게들이 늘고, 사람들로 북적이던 시장도 한산해진다. 저녁이면 지나는 이 하나 없는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조차 점점 꺼려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둘 떠날 채비를 하게 되고 도시는 어쩔 수 없이 점점 늙어간다. 서울과 수도권 밖이라면 어딜 가든 쉽게 맞닥뜨리는 풍경이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수 대비 빈집 비율(공가율)은 7.18%지만 수도권 밖 지방 도시의 비율은 그보다 훨씬 높다. 가령, 강원 평창군은 23.07%, 경북 청도군은 20.51% 그리고 전남 광양시는 16.05%, 전북 김제시는 14.72%다.


불행한 가정마다 그 이유가 다르다고 한 것처럼 사람들이 떠나는 도시도 저마다 다른 이유들이 있긴 하다. 강 건너에 번듯한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거나 도시민을 먹여 살리던 자동차공장이 문을 닫아도 사람들은 떠난다. 아무리 일자리가 많아도 청년들이 더는 찾지 않게 되면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지기도 하고, 행정 체계가 바뀌는 바람에 갑자기 힘을 잃는 도시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좋은 일자리만 만들어내면 얼마든지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을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문제는 그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서울ㆍ수도권 밖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경기도 용인의 남쪽 끝자락이 ‘대기업의 남방한계선’이라는 분석이나, 서울대ㆍ한양대 공대생들의 80%가 수도권 밖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서울이라고 다 사정이 좋은 건 아니다. 가령, 1990년대 ‘이대 앞’이라 불리던 동네를 기억하는 이라면 오늘날의 차분한 풍경은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개복동 카페 '나는 섬'.

카페가 생기고 이곳에 젋은 작가들이 머물며 작업을 하면서

자생적 예술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덕분에 동네를 찾는 발길이

멀리서도 이어지고 있다.  photo by ⓒ조권능




개복동 공연    photo by ⓒ조권능




오래된 재래시장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_ 소프트웨어의 힘


전라북도 군산의 원도심인 개복동은 1910~20년대에 문을 연 전북에서 가장 오래된 두 개의 극장이 자리하고 있을 만큼 한때는 사람들로 붐비던 곳이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권은 쇠퇴하고 사람들의 발길도 끊겼다. 2008년 이곳 개복동에 한 청년이 비어있던 건물 2층에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를 열고 청년 예술가들을 불러 모으면서 스산하던 골목은 조금씩 활기를 되찾아갔다. 그 청년의 이름은 조권능으로, 지금은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관리회사인 ㈜지방의 대표다. 당시 조권능 대표와 청년 예술가들에겐 카페와 골목 곳곳이 캔버스이자 갤러리였고, 언제든 공연을 펼칠 수 있는 무대였다.


그들은 한참이나 버려져 있던 건물의 2층 공간을 손수 뜯어고쳐 아주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로 되살린 데 이어 동네 담벼락 이곳저곳에 그림을 그려 넣고 오랫동안 비어있던 공간을 예술 작품들로 채워 전시회를 열었다. 카페에서는 늘 기타 연주와 노래가 끊이질 않았고, 건물 옥상에선 제법 그럴듯한 공연이 펼쳐지곤 했다. 이들의 활동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카페와 공연을 보러 더 많은 사람들이 개복동으로 모여들었다. 마침 군산에는 미대와 음대가 있어서 가까운 곳에 작업실을 마련한 예술가들도 하나둘 생겨났다.


얼마 뒤 조 대표는 카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칵테일 바를 열었다. 처음 카페를 열던 때처럼 이번에도 오랫동안 비어있던 건물의 2층과 3층을 빌려 동료들과 함께 청소며 페인트칠이며 가게 꾸미는 일을 직접 했다. 공간 곳곳에 스며있는 군산과 개복동이라는 도시의 발자취를 살리면서도 그들만의 감성을 더해 대도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이곳만의 몽환적 분위기를 창조해냈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른 어디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그 분위기에 끌려 이곳을 찾았다. 군산에서 이름께나 날린다는 청년 예술가들은 모두 이곳으로 모여들었고, 주말이면 멀리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로 가게는 늘 북적였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그 카페가 있는 거리를 ‘예술의 거리’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몇 년이 지나 군산시는 예술의 거리 한 켠 오랫동안 닫혀있던 극장인 씨네마우일을 사들여 ‘군산시민예술촌’으로 되살렸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던 동네와 골목에 예술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군산의 오래된 재래시장 영화타운에 위치한

스페인식당 '돈키호테'   photo by ⓒ조권능





군산 영화타운 안에 위치한 사케 바 '수복'

photo by ⓒ조권능




조권능 대표는 2017년 건축공간연구원과 함께 바로 옆 영화동의 낡은 재래시장인 영화시장을 되살리는 일에 뛰어들었다. 시장 규모도 작고 상인들도 나이가 많아 지자체가 여러 번 활성화에 나섰지만 번번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던 곳이다. 조 대표는 청년 창업가들이 좁은 시장 골목 안에 지금까지 없던 가게를 낼 수 있게 도움으로써 새로운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로 마음먹었다. 전국 곳곳 영화시장보다 더 큰 시장에 큰 예산을 들여 조성한 이른바 청년몰들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속속 문을 닫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개복동에서 확인했듯이 해법은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곳을 무엇으로 채우는가에 달렸다고 봤다.


그래서 그는 좋은 콘텐츠와 역량을 가진 창업자들을 뽑는 데도 힘을 썼지만 그렇게 뽑은 창업자들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공간을 꾸미고 콘텐츠를 채울 수 있도록 하는 데도 공을 들였고 그런 노력 끝에 가게마다 창업자의 색깔이 그대로 담길 수 있었다.



“전국 곳곳의 청년몰들은 보통 행정에서 기획과 설계부터 시공까지 다 끝낸 다음에 운영자와 창업자를 뽑아 공간을 하나씩 내주는 방식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창업자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고 책임감도 떨어질 수 있었죠.  그래서 우리는 사람, 그러니까 운영자와 마스터 그리고 창업자를 먼저 뽑은 다음에 그 안에서 ‘지역관리회사’를 만들고 그들이 바라는 대로 설계하고 시공하기로 했어요.  지역관리회사가 기획에 깊이 참여해서 창업자들이 바라는 것들을 구현하려고 애를 썼죠.”  (조권능 대표)



우여곡절 끝에 1년 반이나 지나 문을 연 ‘영화타운’엔 스페인 레스토랑 돈키호테, 사케바 수복, 칵테일바 해무 등이 자리를 잡았고 지금도 군산을 찾는 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청년 예술가들의 개복동 공연  photo by ⓒ조권능





오래 가는 공간을 만드는_ 소프트웨어란


일본 건축사무소 UDS 대표였던 나카가와 케이분은 공간을 살리는 두 가지 접근으로 “지역의 특장점을 공간으로 들여오는 것”과 “지역의 열린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거점’을 만드는 것”을 꼽았다. 이원제 상명대 교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먼저 지역적·역사적·사회적인 관점에서 그 공간만이 갖는 맥락(Context)과, 그 맥락과 라이프스타일을 기반으로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특별한 콘텐츠(Content)가 필요하고, 그 콘텐츠를 통해 지역 주민들과 상호작용하며 연결(Connect) 되어야 한다고 했다. 군산 개복동 예술의 거리와 영화동 영화타운을 들여다보면 이들의 말이 조금 더 와닿는다.


공간은 여전히 힘이 세다. 하지만 꼭 어마어마한 자본을 들여 만든 사람들을 압도하는 공간만이 힘이 센 시대는 지났다. 공간이 넘쳐나는 시대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버려진 공간들이 반짝이는 소프트웨어로 채워지고, 그런 공간들이 더 많아질 때 비로소 도시도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한 글]

- 윤찬영, 『로컬 꽃이 피었습니다』, 스토어하우스, 2021.
- 어반플레이 편집부, 『로컬전성시대』, 어반플레이, 2019.
- 이원제, 『도시를 바꾸는 공간기획』, 북스톤, 2021.
- 김동연, 「'빈집’에 울려 퍼지는 지방도시의 신음」, 시사인, 2019.10.28.
- 정현수, 「" '잘 나가는' 인재, 여기 안넘어 "…대기업 '남방한계선' 그어봤더니」, 머니투데이, 2022.3.1.
- 이진우 외, 「엔지니어 인재들 "초봉 2000만원 더 줘도 지방 안간다"」, 매일경제, 2020.6.15.




  Profile
  윤찬영 센터장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현장연구센터장이자 익산 실본 사무처장.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2월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꽃이 피었습니다>(공저),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공저),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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