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의 나의 도시재생 이야기_ 도시재생, 그 환상과 현실

2020.01.06 1419

‘도시재생’은 모든 동네를 예쁘고 살기 좋게 만드는 만능열쇠일까?
김진애 건축가는 도시재생의 현실을 직시하자고 말한다.
 



지난 12월 7일 서울도시재생주간이 열리고 있는 도시재생이야기관. 김진애 박사는 냉정하면서도 인간미와 위트가 있는 특유의 목소리와 논리로 도시재생이라는 환상과 현실, 그리고 바람직한 도시재생 모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도시 양극화와 젠트리피케이션의 해결사, 도시재생
“어느새 들어선 예쁘고 보기 좋은 곳을 보며 우리는 감탄하지요. 그리곤 금세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좀 더 깊이 그리고 멀리 내다봐야 해요. 우리가 사는 도시는 찬란하지만 그만큼 그늘에 가려진 이면은 더욱 어두워요. 도시의 환한 불빛보다 빛에 내몰리는 곳을 응시해야 합니다.


도시는 어떻게 변화해왔을까요? 재개발과 함께 도시가 고속성장하자 뉴타운 사업이 등장하고 땅값과 분양가가 계속 올랐습니다. 그러다 사업지구가 많아지면서 뉴타운의 가치는 하락했고 주택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부동산 거품이 드러났어요.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거죠. 이와 함께 뉴타운의 성장을 따라잡지 못하는 계층이 생겨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불거졌고 도시재생은 하나의 사회적 대안으로 등장했습니다.


사실 젠트리피케이션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이태원이나 서촌, 북촌 같은 곳에 창조적 계급이 새로 유입되면서 동네가 더 좋아졌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곳에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얘기는 달라집니다. 90년대 세계화는 무서운 속도로 도시를 먹어 치웠고 그때부터 중산층과 부유층이 진입했어요. 고급 상점이 자리 잡고 원주민은 발 들일 곳이 없어졌죠. 동네에 프랜차이즈, 대형 브랜드가 들어오면서 85만 원이었던 임대료는 850만 원으로 올라가죠. 원조 상인은 자연스레 내쫓겨요. 임대인은 임차인이 새로 들어오지 않아도 문제가 안 될 만큼 여유가 있어서 임대료를 거리낌 없이 올려요. 보기에는 고급스럽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텅텅 빈 상태예요. 도시생태계가 엉망이 된 것이죠. 이것이 ‘젠트리피케이션의 배신’이에요. 도시를 살리려다 기존 주민이 삶의 터전 밖으로 내몰린 처참한 결과를 낳았죠.”


도시는 중요한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김진애 건축가는 도시의 양극화와 젠트리피케이션, 두 가지 문제를 강조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상가와 주거 모두에서 일어나 원주민을 실향민(displaced people)으로 만든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모델이 ‘도시재생’이다. 도시재생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미래가 달라진다. 기대가 큰 만큼 환상을 품기도 쉽다. 김진애 박사는 도시재생의 환상과 현실을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지난 6월 개관한 '서울도시재생이야기관'은 김진애 건축가의 강연을 기다려온 청중으로 가득했다.



도시재생의 현실을 극복하는 것은 공공과 민간의 협력
“우리는 도시재생이 도시 양극화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곤 해요. 그런데 공공과 민간이 제대로 손잡지 않으면 도시재생은 실패하기 쉬워요. 특색 없이 사진만 찍기 좋게 만든 벽화마을이 대표적인 사례죠. 지자체가 나서서 마을 주민의 담장에 벽화를 그리는 것. 공공이 민간의 사유권을 침해하는 이런 강제적인 변화는 ‘오버투어리즘’으로 이어져 주민에게 피해를 입히곤 해요. 또 벽화를 따라 카페가 주르륵 들어서면 동네 기업은 저물어요. 그렇게 붐을 일으키다 잘 안 되면 다 빠져나가고 결국 덩그러니 벽화만 남는 거죠. 지방에 가면 이런 경우가 많아요. 도시재생을 너무 이상적으로만 그렸기 때문에 생긴 결과입니다. 그나마 지방은 변화속도가 서울에 비해 느려 다행이지만 서울은 빠르게 변해 더 우려스러워요.


도시재생이 부딪힌 또 하나의 현실은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도시재생 사업이 이뤄지려면 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과 공공이 협의해야 하지만 주민들 중에는 어쩔 수 없이 미래를 생각하지 않거나 빨리 포기하는 분이 있어요. 살던 동네에서 쫓겨나기는 싫고, 싸게 쫓겨나기는 더 싫은데, 돈을 투자할 여력은 없는 거죠.”


그렇다면 도시재생의 환상과 현실을 인정하고, 도시재생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면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진애 박사는 강연을 이어나갔다.




 
김진애 박사는 오랫동안 도시 정책을 만들어온 경험에서 나온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건강한 도시재생의 시작은 도시를 생명으로 바라보는 것
“도시재생에 있어 가장 바람직한 공공의 역할은 주민들과의 약속을 만들고 지키면서 가게를 운영하는 민간이 잘 되게 돕는 거예요. 보조적 역할에 머무르면서 토지 수요자인 민간에게 동력을 부여하는 것이죠. 주민이 떠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저소득 계층을 위한 주거지원제도를 만들고, 돈을 많이 안 들이고도 집을 고쳐 살 수 있게 집수리 자금을 지원하면서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살 수 있게 도와줘야죠. 그런 의미에서 집을 수리하고 그곳을 떠나지 않는 주민들이 진짜 영웅이에요.


건강한 도시재생을 위해서는 도시생태계를 생명순환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해요. 과거에 도시개발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도시재생도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도시재생은 사이클이 중요해요. 도시재생 지역에 본격적으로 공공자금이 지원될 때를 대비하고, 운영체제를 고민하고, 외지인이 새로 들어왔다가 가능성을 보고 돈을 투자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야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이 되는 거죠. 이건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사실인데 저는 도시재생을 낳게 하고 지속하게 하는 건 문화예술적 가치보다 사회경제적 가치라고 봐요.”




 


“건강한 도시를 만들려면 도시를 생명순환의 관점으로 봐야 해요.
도시개발이 그랬던 것처럼 도시재생도 획일적으로 진행돼선 안 됩니다.”



경제 고도성장으로 더 넓고 새로운 도시가 필요해지자 우리는 논과 밭을 도시로 개발하고 새로운 주민을 유입시켰다. 성장에 따른 도시개발은 필연적인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급작스럽고 획일적인 난개발로 인한 각종 도시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낯선 곳으로 내쫓기는 아픔을 겪었다. 이렇게 정부나 민간이 주도하는 일방적인 도시개발의 폐해를 줄이고, 주민과 지역이 이어온 삶의 맥락을 존중하면서 더 살기 좋고 활력 넘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바로 도시재생이다.

산업화 이후 우리나라 도시가 겪어온 이런 진화 과정을 체험하며 도시를 위한 많은 법안을 만들어온 김진애 박사의 경험을 통해 청중은 무엇이 도시재생의 환상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좋은 뜻이 좋은 결과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경제적 가치가 창출되지 않고서는 도시재생이 지속되기 힘들다.’ ‘도시재생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바라보며 사업을 실행해야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으로 이어진다.’ 김진애 박사가 던진 메시지를 품고 청중들은 각자의 현실 속으로 돌아갔다.





이날 청중은 강연을 통해 도시재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게 돼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글_신은정
사진_이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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