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노들섬 운영 총감독, 김정빈 교수

2020.06.17 2934






노들섬 운영 총감독, 김정빈 교수

“ 자발적 표류의 공간, 노들섬으로 떠내려오세요 ”




서울시 용산구 양녕로 445. 한강대교를 절반쯤 건너면 서울 한복판에서 40년간 조용히 묻혀있던 섬 하나를 만나게 된다. ‘노들섬’이다. 2012년부터 시작된 기나긴 도시재생 논의를 통해 새로운 얼굴과 목소리를 찾은 이곳은 2019년 9월, ‘음악을 매개로 한 복합문화기지’로 개장해 강과 바람, 문화와 예술로 서울시민을 맞고 있다. 쉽지만은 않았던 여정을 거쳐 지금의 노들섬을 일궈낸 어반트랜스포머 컨소시엄의 총감독,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김정빈 교수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노들섬 여행을 떠났다.




너무 익숙한 이름이지만 막상 노들섬이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르는 시민이 대부분이다. 본래는 어떤 곳이었나?

일제강점기에 인공섬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서울시가 한강개발사업을 하면서 건설사들에게 돈 대신 땅을 주던 시기에 어느 건설사로 넘어가 거의 버려지다시피 있었다. 그러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임기가 시작되면서 이곳에 텃밭이 만들어졌다. 덕분에 도심 속 예쁜 텃밭이 생겼지만 섬의 위쪽 지대만 정비하고 텃밭을 만들어서 강과 가까운 저지대 부분은 덩굴과 아까시 나무로 뒤덮인 정글 같았다. 차가 엄청 막히는 한강대교에서 한 발짝만 들어오면, 세상의 소리는 여전히 들리지만 하늘과 바람만 느껴지는 곳이었다. 초현실적이랄까. 그 모습에 반해, 그 힘든 준비 과정에서도 우리 팀은 노들섬에 와서 ‘예뻐서 봐준다’며 쉬어 가곤 했다. 새로 개장한 노들섬에도 우리가 느꼈던 그 감각들이 조금이나마 녹아들길 바랐다. 





한강대교 중간에 위치한 노들섬(사진제공·노들섬 홍보팀)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데, 어떤 계기로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나?

도시공학과는 도시공간을 만들고 설계, 계획하는 곳이다. 내 수업 중에 ‘잊힌 공간(forgotten space)’이라는 커리큘럼이 있었다. 도심에 있지만 잊힌 공간, 활용되지 못한 공간을 찾고 생각해보는 수업이었는데, 그 중에 가장 큰 공간이 노들섬이었다. 도시 설계를 하지만 공간 콘텐츠나 운영에도 관심이 많다 보니, 이런 공간을 잘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접점을 찾는 해외 사례들을 가지고 학생들과 스터디를 했다. 지금 여기서 함께 일하고 있는 팀장들이 그때의 제자들이다. 창업을 하고 싶다는 제자들의 의지로 2015년에 도시기획 스타트업 ‘어반트랜스포머’를 만들었고, 마침 노들꿈섬 공모가 열려 뛰어들게 됐다. 







노들섬은 시민 공론화 과정을 통해 쓰임을 먼저 찾고 그에 따라 공간이 만들어졌다. (사진제공·노들섬 홍보팀)





노들섬 재생은 시민참여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안다. 노들꿈섬 공모는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진행됐나?

노들섬 재생에 대해서는 굉장히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오페라하우스 건설 계획이 무산되면서 2012년부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시민 참여의 공론화 과정이 있었다. 이 과정을 거쳐 2015년 노들꿈섬 공모가 진행됐다. 세빛둥둥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선유도 등 서울시의 재생사업들이 완결된 이후 각자 큰 고민을 품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노들꿈섬 공모는 으레 진행하던 방식인 땅을 주고 건축 공모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기획안을 선정하고 그 안에 맞춰 건물을 조성하고, 이후의 운영을 그 제안자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진행하려 했다. 특히 1차 공모는 특별한 자격 요건 없이 모든 시민이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작은 스타트업이었던 어반트랜스포머가 참가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다. 여기서 10팀을 선정해 조금 더 전문적인 경합을 거치고, 거기서 나온 안을 가이드라인으로 3차 건축 공모를 했다.





  

‘잊힌 공간’을 가르치던 김정빈 총감독은 잊힌 공간, 노들섬을 되살렸다.





어반트랜스포머는 왜 ‘음악’을 매개로 한 복합문화기지를 만들었나? 문화가 중심이 되는 도시재생을 시도한 이유가 궁금하다. 

공모 당시 프리젠테이션에서 한강의 지도와 런던 템즈강, 파리 센강의 지도를 비교했다. 건물 하나 건너 문화시설이 있는 템즈강· 센강과 달리 한강에는 문화시설이랄 것이 없었다. 국회의사당을 문화시설로 표시해야 할 정도였다. 노들섬은 한강에 문화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음악을 선택한 건 예술 분야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분야이기도 했지만, 단순히 음악과 섬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다만 ‘공연장이 중심이 되는 음악의 섬’에 갇히지 않고 책, 식물, 전시, 상품, 경험 등이 다양하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문화의 영역을 열어놓았다. 






“ 창의적인 공간을 만들려면
그에 맞는 제도도 같이 만들어져야 한다.
나는 그걸 공간 거버넌스라 생각한다.”





공모를 거쳐 운영까지 오는 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겠다.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

굉장히 혁신적인 형태의 공모전이었지만 그걸 받아줄 제도가 없었다. 공모 요강에는 당선자에게 운영권에 대한 우선협상권을 준다고 명시됐지만, 제도를 법적으로 아무리 검토해 봐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 제도 안에서 풀어볼 방법을 찾거나 제도를 바꿔보려고 나와 우리 직원, 서울시 담당자가 사방팔방 뛰어다녔지만 불가능했다. 결국 2017년 서울시의 우선협상권을 포기하고, 2018년 다시 입찰에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2017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 부른다(하하). 창의적인 공간을 만들려면 그에 맞는 제도도 같이 만들어져야 한다. 나는 그걸 ‘공간 거버넌스’라고 생각한다. 공간 거버넌스는 이제 문제의식이 시작되는 수준이다. 이건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문제다. 
서울시에서는 민간 위탁을 3년 단위로 계약한다. 노들섬의 경우 이례적으로 준비 단계부터 시작했으니 실질적인 운영 시간이 1년 9개월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결격사유가 없는 경우 1회 재계약이 되긴 하지만 그걸 합쳐도 4년 9개월이다. 준비 기간이나 노력에 비해 그 댓가가 혹독했다. 





 
노들섬은 이렇게 세련된 공간이지만 시민에게 활짝 열려 있다.




그럼에도 노들섬을 운영하며 가장 뿌듯한 순간은 언제인가?

동네 주민분들이 산책을 많이 오시는데, 다들 문 열고 ‘들어와도 되냐’고 물으셨다. 이렇게 따뜻하게 꾸며진 공공시설에서 환대 받은 경험이 아직 우리에게는 없는 거다. 공공청사 로비에는 소파 하나 놓인 게 전부고, 이런 공간은 보통 카페이거나 돈 내고 뭘 사야 하는 상업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기는 공공 공간입니다, 마음껏 들어오셔도 좋습니다’ 하는 팻말을 붙여놓았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이곳을 점점 더 편안하게 이용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조금씩 변화해가고 있는 거다. 이런 변화들이 뿌듯하다.  




도시재생에서 노들섬의 사례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시 안에 버려진 공공 부지를 재생할 때 이젠 단순히 공적인 공간을 공급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예전에는 공기관에서 미술관이나 공연장을 만들면 사람들이 모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민간에서 공급하는 선택지가 많아졌다. 그런 면에서 버려진 공공 부지를 어떻게 사용할지를 시민에게 물었다는 점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도시재생 사업에서 이렇게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 때는, 그에 수반된 제도와 운영 구조까지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사례가 되면 좋겠다. 사실, 부담도 크다. 공공에서 민간에 맡긴 공간이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는 맡기지 않을까 봐 그렇다. 대기업이 아닌, 우리처럼 작은 회사도 기회만 있다면 이렇게 좋은 공간을 운영할 수 있다는 모범 사례가 되고 싶다.








“ 노들섬이 서울시민에게
자발적인 표류의 공간이 되면 좋겠다. ”






앞으로 노들섬이 서울시민에게 어떤 공간이 되면 좋겠나?

‘자발적인 표류의 공간’이 되면 좋겠다. ‘음악’이나 ‘문화기지’라는 말들도 중요하지만, 나는 ‘표류하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내려 오시라’고 주변에 말하곤 한다. 민간의 공간들은 요구가 많다. 뭔가 해야 하고, 사야 하고, ‘힙’해야 하고, 취향도 분명해야 하고. 그런 곳에서 쭈뼛쭈뼛하는 대신, 이 공간에 와서 편하게 머물다가 자기도 모르는 취향을 발견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것들을 얻어가셨으면 한다.





노들섬의 지난 행사들

     

    

    







* 다음 달에는 노들섬 운영 총감독 ‘김정빈 교수와 함께 아름다운 노들섬 투어’ 기사가 이어집니다. 


글 | 박예하

사진 | 이예린(일오스튜디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