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로버트 파우저(Robert J. Fouser) - 서울이 '한옥'과 '스타 건물' 보존의 한계를 넘으려면

2020.10.29 1833


2017년 서울로7017에서 본 서울역




서울이 '한옥'과 '스타 건물' 보존의 한계를 넘으려면




로버트 파우저(Robert J. Fouser)  前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처음 서울을 방문한 것은 1982년 여름이었다. 당시 미시간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일본어 연습을 위해 여름방학을 일본 친구 집에서 보냈다.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이웃 나라인 한국에 관심이 생겨 일본에서 한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여행 떠나기 전, 도쿄 큰 서점에서 1980년대 많은 외국인이 애용했던 ‘Lonely Planet’ 관광 시리즈의 한국 안내서를 구입해 읽었다. 당시 서울의 전통과 역사가 담긴 관광지는 고궁, 종묘, 남대문과 동대문, 조계사 정도였다. 북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근대 건축물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인사동은 쇼핑 차원에서 명동과 남대문, 동대문 시장과 같이 소개되었다.


지금 서울을 찾는 외국인은 1982년에는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정보를 접할 수 있다. 고궁과 조계사가 여전히 소개되고 있지만, 북촌, 서촌, 익선동, 인사동 등 한옥이 밀집되어 있고 역사적 경관이 남아 있는 지역에 대한 정보가 많다. 유명한 관광지에 가서 무엇을 보고 사진을 찍는 것보다 천천히 걸으면서 분위기를 즐기기 위한 정보도 많다. 사대문 안에 있는 조선 시대 유명한 건축물이 크게 부각되던 1982년의 서울과 달리 2020년의 서울은 메가시티이다.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변화의 거점은 북촌


약 40년 사이에 한국 그리고 서울은 많이 변했지만, 도시재생 관점에서 보면 변화의 거점은 북촌이다. 왜 그럴까? 1982년의 북촌은 이미 쇠퇴하는 부촌이었다. 1970년대에 고등학교 평준화와 명문고들의 강남 이전으로 오랫동안 북촌에 살았던 상류층은 강남으로 떠났다. 동시에 1960년대 외면했던 아파트가 관심을 끌고, 점차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오늘날 북촌의 자랑인 한옥은 불편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집이 되었다.


1970년대 후반, 휘문고등학교가 있었던 터에 현대빌딩이 들어오면서 인기가 없어진 한옥이 철거될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북촌을 보존해야 된다는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면서부터다. 당시 신문을 보면 논의의 핵심은 올림픽을 위해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선진국처럼 보여줄 만한 역사적 경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생각은 1960~1970년대 유럽과 북미에서 일어난 여러 역사적 경관 보존 운동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1984년 서울 가회동이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됐다. 집을 그대로 보존하려고 선진국처럼 엄격한 규제를 도입했다. 1980년대에 아파트가 주류가 되면서 거의 모든 한국인은 아파트에 사는 것을 꿈꾸었다. 불편한 집을 편리하게 고칠 수 없으면서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지 않은 한옥은 많은 주민에게 고통이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재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1984년 가회동_  1983~84년 서울대에서 한국어를 배우던 시절, 북촌을 걸으면서 한옥을 처음 알게 되었다.






1990년은 1987년에 시작된 민주화가 더 깊게 뿌리를 내리면서 주민의 요구에 정치인들이 귀를 기울였다. 1990년대 초에 엄격한 보존 규제가 완화되면서 한옥을 부수고 다층 다가구 주택을 짓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이질물처럼 보이는 높은 집은 그 시대의 산물이 되었다. 그러자 북촌에 대한 걱정이 고조되면서 서울시는 1990년 말부터 새로운 보존 정책을 도입했다. 역사적 경관을 유지하기 위해서 규제를 다시 강화했지만, 이번에는 주민의 호응을 얻기 위해 집주인에게 한옥 집수리와 보존을 위한 지원금과 무이자 융자를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공적 자금을 개인에게 지원하는 제도였기 때문에 절차와 심의가 있었지만, 한옥이 점차 수리되면서 북촌은 ‘한옥마을’이라는 명소가 되어 관광 자료에 소개되었다. 2000년대 말부터 북촌이 서울에서 꼭 가봐야 할 관광지로 변하면서 보존보다는 ‘과잉 관광’과 ‘젠트리피케이션’이 마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2012년 가회동_  한옥 보존 사업이 활발한 북촌은 서울의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역사적 경관 보존 관점에서 북촌이 성공한 덕에 전국적으로 오래된 도시 경관이 남아 있는 도시는 서울시와 비슷한 지원 제도를 도입했다. 처음에는 전주 한옥마을처럼 한옥 중심이었지만, 일제 강점기의 경관이 잘 남아 있는 군산이나 목포까지 보존 정책을 도입했다. 한국 도시 역사에서 2010년대는 오래된 동네의 황금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촌 보존은 건축물 중심으로 역사적 경관을 남긴 것이지만, 건축물 외에도 남길 것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기준으로 보면 유산은 ‘문화’와 ‘자연’으로 나뉜다. 도시의 역사적 경관과 건축물은 문화유산으로 분류되고 독특한 생태는 자연유산으로 분류된다. 이 분류를 보면 문화적 가치와 자연적 가치가 있는 것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서 유산을 지정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각국에서 올라오는 후보를 심사하고 새로운 세계유산을 결정한다.


유네스코 기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독특함과 우수성이라는 가치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다소 애매한 가치 중심으로 논의하고 결정을 내린다. 서울의 경우 가치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남길지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오래된 동네 가운데 한옥이 많은 동네만 보존의 대상이 된다면 다른 형식의 주택이 많은 동네는 가치가 없는 것인가? 한옥은 일제강점기에 전통 건축을 살려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 적용했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가 있다. 그 가치 때문에 1970년대 말부터 북촌에 대한 애착과 남기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북촌에 대한 열정은 결국 오직 전통 건축을 ‘우리 건축’으로 보는 관점과 깊은 관계가 있다.




"앞으로 서울이 보존과 개발의 갈등을 극복하고

후세에 무엇을 남기려면... "




문제는 서울에는 전통 건축 이외에도 여러 건축 형식이 있고 대부분이 한국에서 나온 재료로 한국인이 직접 지었으며 그 후에 한국인이 사용했다는 것이다. 넓게 생각하면 서울의 모든 건축은 ‘우리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지은 건물은 지배자가 설계와 감리를 했더라도 한국에서 구한 재료로 한국인 노동자가 지은 것이다. 경제가 빠른 속도록 성장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지어진 콘크리트 상가와 아파트도 한국인이 설계하여 한국인의 노동으로 지은 것이다. 


‘우리 건축’을 넓게 해석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이다. 재개발을 위해 철거 대상이었던 세운상가와 서울역 고가도로를 보존한 것은 ‘우리 건축’을 새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만 해도 전통 건축이 아니면 별 관심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큰 진전이다. 하지만 이 큰 업적은 새로운 과제를 남겼다. 세운상가는 규모와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과의 인연 때문에 가치를 쉽게 인정받았고, 서울역 고가도로는 위치와 MVRDV의 독특한 설계 때문에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생겼다.




2017년 서울로7017에서 본 서울역_  1970년대 급성장기의 콘크리트 인프라 구조물은 시민의 쉼터로 다시 태어났다.




2009년 세운상가._ 재개발을 위해 철거 대상이었던 세운상가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보존하게 되었다.




2013년 창신동_  한옥과 스타 건물이 없는 창신동은 도시 재생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찾고 있다.





현재 서울에서는 한옥이 많은 동네는 역사적 경관 관점에서 보존되고, 스타성이 있는 건물만 보존의 대상이다. 논의의 폭이 좁아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북촌처럼 많은 지역에서 보존과 개발에 대한 갈등이 심하다. 



서울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도시가 변화 중이다.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고 부수고 또 짓는다. 그 자연스러운 변화 속에 의도적으로 무엇을 남기려면 남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 가치는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논의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앞으로 서울이 보존과 개발의 갈등을 극복하고 후세에 무엇을 남기려면, 가치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열린 논의가 필요하다.     사진 · 로버트 파우저








로버트 파우저 (Robert J. Fouser) PROFILE

로버트 파우저(Robert J. Fouser)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시간대에서 일어일문학 학사 및 응용언어학 석사,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와 일본 교토대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가르쳤고, 일본 가고시마대에서 교양 한국어 과정을 개설해 가르쳤다.

저서는 한국어로 『미래 시민의 조건』(2016), 『서촌 홀릭』(2016), 『외국어 전파담』(2018),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2019)가 있고 현재 외국어 학습에 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이 외에 『한국문학의 이해』 (김흥규 저)를 『Understanding Korean Literature』(1997) 영어로 번역해 출간했고 『Hanok: The Korean House』(2015)을 공저로 출간했다. 취미는 오래된 동네 답사와 사진 촬영이다. 현재 미국에서 독립 학자로서 활동을 하면서 한국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