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유지연 기자_ 진화하는 헌 집 중개, 신축보다 멋진 낡은 부동산을 소개합니다

2020.12.08 2103



1930년대 지어진 도쿄 시나가와 구의 옛 가옥. 옛 가옥의 아름다움 이라는 광고를 내 매입자를 찾았다. 

새 자재를 일부 사용했지만 덧붙인 흔적이 없도록 절묘하게 보수했다.

[ 사진_책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중개합니다' ⓒ이케다 마사노리 ]





진화하는 헌 집 중개,

신축보다 멋진 낡은 부동산을 소개합니다




유지연(중앙일보 기자)


2003년, 일본 도쿄에 빈 건물이 조금씩 늘어나던 시기. 낡고 오래된 공간을 좋아하는 다섯 명의 건축가가 블로그에 자신들 취향의 빈 건물 이야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저 리노베이션(공간 개보수) 기획을 하고 싶어 시작했던 블로그는 곧 월 30만의 방문객이 모여드는 대형 채널로 성장했다. 빈 건물 이야기가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신축 위주의 틀에 박힌 물건만 매물로 등장하는 일반 부동산에서는 엿볼 수 없는 색다른 공간에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을 보고 다섯 명의 건축가는 재미있는 부동산 중개소를 떠올렸다. 


신축, 역세권, 풀옵션. 부동산 매물을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다. 입지와 함께 부동산의 가치를 결정짓는 키워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이런 기준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축이면서 내가 마음대로 개조할 수 있는 매물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역세권이 아닌 숲과 나무가 우거진, 오래된 공원 인근의 부동산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조건보다도 반려동물에 최적화된 매물을 찾기도 하고, 천장이 높아 탁 트인 매물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부동산을 보는 새로운 가치 기준을 발굴하는, 도쿄R부동산 이야기다. 


매력 있는 헌 물건도 가능성이 있다.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했을까. 또 이런 물건만으로 어떻게 대형 부동산 사이트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도쿄R부동산의 이야기를 다룬 책,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중계합니다(2017,정예씨)』를 읽고 다양한 의문이 떠올랐다. 지난 2019년에는 서울에 방문한 도쿄R부동산의 요시자토 히로야(吉里裕也) 공동대표를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당시 나눴던 인터뷰를 재구성해 도쿄 R부동산의 이야기를 전해보려 한다. 





대폭 수리 필요라는 임대 광고를 낸 도쿄 시부야구의 오래된 목조 주택.디자인 회사 U-MA가 입주했다.

수리 계획을 받아 건물주가 심사하도록 했다.파격적인 리모데링으로 물건의 숨어있는 잠재력을 발견,  건물 전체를 브랜딩한 사례가 되었다.

 [ 사진_책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중개합니다' ⓒ이케다 마사노리 ]





도쿄R부동산


건축가로 부동산 개발 회사에 다녔던 요시자토 대표 주변에는 독특한 건물을 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왕이면 개조가 가능한 곳을 원했던 지인들에게 상담을 해주곤 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만 가진 독특한 취향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상담을 하다 보니 이런 낡은 공간을 원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존 부동산 시장이 무시했던 틈새시장이다. 



도쿄R부동산은 기존 부동산 시장에선 가치 없는 것으로 간주됐던 ‘헌 물건’에 주목했다. 물론 헌 물건이면서 개성이 있는 매물을 찾아 소개했다. 개성 있는 물건을 찾다보니 자연스레 오래된 건물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70년 전 지어진 낡은 가옥이나, 수리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낡은 목조 주택이지만 어느 한 부분이 특출 나게 매력적인 공간들이다. 신축보다 오래된 공간이 지니는 특별한 정취를 즐기는 이들이 주로 R부동산을 찾았다. 




지요다구에서 미니빌딩을 사다라는 매물 광고를 낸 도쿄 지요다구 바닥면적 16㎡ 미만의 초미니 빌딩

[사진_책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중개합니다' ⓒ이케다 마사노리 ]




문제는 어떻게 매력적인 매물을 발굴하느냐는 것이다. R부동산은 온라인 부동산이다. 또한 일반 부동산처럼 구역 안의 모든 매물을 올리지 않고, 구역에 상관없이 매력 있는 매물만 골라 올린다는 점에서 부동산 업계의 온라인 편집숍이다. 편집숍의 성패는 물건을 고르는 눈에 달려있다. 요시자토 대표는 R부동산 운영 초반 동네를 돌아다니며 괜찮아 보이는 건물에 무작정 벨을 눌러보는 것으로 매물을 늘려갔다고 한다. 10년 정도 지나자 물건을 보는 눈도 생겼다. 사실 좋은 매물을 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R부동산도 영업 담당들이 여러 명인데, 이들의 취향도 각자 달라 각자 기준으로 좋은 매물을 소개하도록 한다. 다만 ‘이런 매물은 나쁘다’는 것만 공유한다고 한다. R부동산과 가장 맞지 않는 매물은 역 앞에 있는 원룸이나 1인 거주 아파트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매물은 취급하지 않는다. 



좋은 매물을 발견한 뒤에는 이 매물의 개성을 최대한 살려 소개한다. R부동산은 온라인 부동산이다. 매물을 소개하는 사진과 글이 절대적이다. 매물이 나열되어 있고, 이것이 핵심 콘텐트인 것은 기존 부동산 사이트와 매한가지다. 다만 매물을 소개할 때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정보는 굳이 나열하지 않는다. 매물 근처에 역이 있는지, 가격은 어떠한지, 면적은 어떠한지는 간단히만 정리하고, 그보다는 매물이 가진 고유한 분위기를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공간에 들어섰을 때 느낌이 어떠한지, 주변에는 강이 있는지 산이 있는지, 창은 얼마나 큰지, 천장은 높은지 등이다. 사진도 공간의 모든 부분을 보여 주기보다 중요한 정보 값이 있는 사진만을 게재한다. 화장실이 중요한 공간이라면 화장실을 메인으로, 별로 중요치 않은 공간이라면 아예 빼기도 한다. 감각적인 매물 소개 문구는 R부동산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이다. ‘푸르름에 둘러싸여’‘나이테가 새겨진 상가 건물’‘바이커를 위한 아파트’ 등 부동산이 아니라 여행지를 소개하는 것처럼 매물을 소개한다. 부동산 중개가 수익 모델이지만 일종의 부동산 미디어라 보면 된다. 요시자토 대표는 “잡지를 편집하는 느낌으로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사용자에게 좋은 집을 정직한 시선으로 소개하는 별집 부동산

[ 사진_홈페이지 캡처 ]





별집 부동산


최근엔 우리나라에도 도쿄R부동산과 비슷한 부동산 중개소가 생겼다. 역시 건축학도였던 전명희 대표가 운영하는 ‘별집’ 부동산이다. 1인 중개소로 온라인 사이트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부동산 플랫폼이면서, 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그 지역의 매물을 모두 소개하는 일반적 부동산과 달리 중개사가 생각하는 좋은 집만 골라 소개하는 ‘큐레이션’ 부동산이다. 별집 부동산은 해당 집에서 살면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에 맞는 매물만 골라 소개한다. 그러다보니 기존 부동산 시장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아파트가 아닌, 건축가가 설계하고 지은 주택 위주로 소개한다. 최근에는 서울 행촌동의 빈티지 아파트 등 오래된 매물을 소개하기도 했다. 오래된 공간이 주는 안정감과 익숙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매물이다. 



신축보다 매력적인 낡은 헌집 중개. 인구가 줄고, 빈집이 느는, 동시대적 문제를 공유하는 일본과 한국에서 차례로 이런 부동산이 등장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부동산은 투자 대상이면서 자산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삶의 우선순위, 가장 추구하고 싶은 가치는 다르다. 시세나 면적, 투자 가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집이 공원 가까지 있는지, 자전거 타기 좋은 위치에 있는지를 따지는 이들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물건도 어떤 사람에게는 좋을 수 있다는 것. 도쿄R부동산과 별집 부동산의 공통점은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사용자 중심에서 공간을 소개했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의 분위기와 정서를 부각하고,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을 환기시킨다. 철저히 자본의 논리로만 흘러갔던 부동산 시장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 있다. 







중앙일보 유지연 기자

현재 중앙일보에서 라이프 스타일 부문 취재 기자로 일하며 패션·뷰티·리빙‧디자인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을 쓰고 있다. 우리의 현재 생활 방식을 반영하는 소비문화와 라이프 트렌드를 주로 다룬다. 최근엔 서울의 다양한 공간, 특히 재생 건축에 관심이 많다.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는 팟 캐스트 ‘오늘도 사러 갑니다’를 진행했다. 현재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필환경 라이프’, 서울을 더 멋진 곳으로 만드는 기획자들을 만나는 ‘서울 라이프스타일 기획자들’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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