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숭인 총괄코디네이터, 신중진 교수_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

2021.07.26 1772




창신·숭인 총괄코디네이터, 신중진 교수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



서울시 근린재생형 도시재생 사업 중 2014·2015년 선정된 8개 지역의 마중물 사업이 종료되었다. 그 성과는 무엇이며 남은 숙제는 어떤 것일까? 2014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이 시작된 창신·숭인지역에서 도시재생 총괄 코디네이터로 활동한 성균관대 건축학과 신중진 교수에게 그 답을 물었다. 




창신·숭인지역의 특징은 무엇인가?

행정구역으로는 4개 동을 아우르고 면적은 83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엄청나게 넓은 지역이다. 인구가 3만 명이 넘으니 세대 수로 따져도 1만 세대가 넘는다. 역사적으로 한양 도성과 함께 해왔고, 산업적으로는 동대문 패션 산업의 배후 생산기지 역할을 해온 지역이다. 이곳 주민 3만 명 중에 3분의 1 이상은 봉제 산업과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면서 일과 생활을 꾸려왔다.



처음에 어떤 목표로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했나?

창신·숭인은 서울은 물론 대한민국 전체로 봐도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이 시작된 최초의 지역이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일이었다. 뉴타운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던 중 최초로 주민 30% 이상의 반대로 뉴타운에서 해제된 곳이기도 했다. 2013년 주민 주도로 뉴타운 사업에서 해제된 후 2014년 5월에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뉴타운을 추진하던 25%의 주민과  뉴타운을 반대하던 75% 이상 주민들  사이의 대립을 완화하는 것이었다. 주택과 길을 고치고 공용 공간을 만드는 보이는 재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관계를 재생하는 일부터 해야 했다.




창신·숭인지역 총괄 코디네이터로 일한 신중진 교수.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걷는 일 자체가 그에겐 어려움이자 보람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부터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자주 찾아가서 보다 많은 주민의 이야기를 듣는 것. 2014년 5월 처음 총괄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은 후 1년 동안 지역에 180일 이상을 찾아갔다. 이전의 학습과 경험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시재생과 관련한 가이드라인도 없었고, 지원센터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코디네이터라는 명칭도 없어 활동가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야 했던 상황 자체가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을 서둘러 수립했기에 크고 작은 소통과 배려의 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그게 내 인생을 바꿔 놓은 전환점이었다. 활성화 사업은 2017년 끝이 났지만 나는 지금도 창신·숭인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서 연락이 오면 언제나 달려가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는, 그런 관계가 되었다. 



 

창신·숭인지역 활성화 사업을 통해 주민공동이용시설인 백남준기념관, 수수헌 등이 지어졌다. 



가장 최근엔 어떤 일로 연락이 왔나?

오디 따러 오라는 주민의 전화였다(웃음). 주택 밀집도가 높아서 텃밭은 거의 없지만 주택 옥상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이 많다. 매년 봄마다 오디, 가을엔 대추 따러 오라고 불러주신다. 활성화 사업이 끝난 후에도 잊지 않고 불러주는 것, 주민 모임, 협동조합과 교류하며 계속 현장에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이다. 어떻게 보면 내게도 또 다른 고향이 생긴 셈이다. 창신·숭인지역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의 목표 중 하나는 이곳 주민들에게 제2의 고향을 만들어주는 일이었다. 지방 도시나 시골에 살다 10대에 서울로 올라와 평생 이곳에서 봉제 또는 식당 일을 하며 살아온 주민이 대부분이었다. 베트남이나 네팔, 몽골 등에서 온 다문화 가정도 많았다. 그런 분들께 기술만 있으면, 아니 특별한 기술 없이도 일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정 붙이고 먹고 살 수 있는 동네를 만들어드리고 싶었다. 



도시재생 1단계 마중물 사업은 창신·숭인지역에 어떤 의미였을까?

창신·숭인지역은 그대로 보존하기엔 물리적으로 너무나 열악한 동네였다. 골목에 잠시만 있어도 오토바이 소리에 정신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예산은 부족했지만 주어진 돈으로 하고 싶었던 것은 최소한의 공간적 모델을 만드는 일이었다. 지역에 있던 거점 공간을 개·보수하고, 주민공동이용시설을 새롭게 지어 동네 어느 곳에서든 돌봄시설과 쉼터, 남녀구분 화장실에 5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건물을 고치거나 새로 지을 때 서울시 공공 건축가를 최대한 활용했고, 현상설계 심사과정에 모두 참여해 심사했다. 앞으로 건물을 짓고 리모델링 하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기준을 마련하고 싶었다. 그 이후 신축과 리모델링 등 다양한 건축행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대폭 낮아진 범죄율도 무척 의미 있는 결과다. 창신·숭인은 정말 매력적인 지역이다. 도심 한복판에, 지하철역 세 개가 근접한 이른바 ‘트리플 역세권’인데 서민의 비중이 이렇게 높은 동네가 없다. 앞으로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회오리마당, 창신소통공작소 등 인상적인 모습의 창신숭인 주민공동이용시설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을 시작한 2014년으로 다시 돌아가 딱 하나 바꿀 수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더 자주, 더 많은 주민을 만났을 것 같다. 특히 도시재개발을 찬성하고 도시재생을 반대하던 분들을. 뉴타운 해제로 가장 큰 상실감을 느꼈을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위로하지 못했다. 제한된 시간과 예산 안에서 해야 할 일에만 골몰했다. 하지만 지금은 재개발할 때가 아니고, 개발하더라도 필요한 곳을 나눠서 소규모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도시재생 마중물 사업이 종료된 창신·숭인 지역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라건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 예전에는 정책을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을 ‘동의율’로 나눠 소수의 목소리를 묵살한 측면이 있었다. 앞으로는 보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서로의 상황과 논리를 한 테이블 안에 펼쳐 놓고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맞고 틀리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끝없는 싸움만 이어질 뿐이다. 




‘우문현답’.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도시재생 현장 코디네이터에게 신중진 교수가 당부하고 싶은 말이다.



도시재생 1단계 사업에 참여한 주민, 현장 코디네이터, 행정 관계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아직도 나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주민분들께 감사 말씀드리고 싶다(웃음). 창신·숭인지역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지역에 문제가 생겼을 때 주민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는 자리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손뼉 치고 싶은 일이다. 다만 재개발을 찬성하는 분들과 너무 대립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분들도 지역을 좋게 만들기 위해 그리하시는 거라 생각하고 더 많은 대화를 하셨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우선 건강하셔야 한다. 


코디네이터분들께는 사죄드리고 싶다. 2014년부터 4년 동안 충분한 대가도 없이 오로지 창신·숭인 지역만 생각하자며 그분들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함께 일한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지금도 도시재생 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보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덧붙이고 싶은 말은, 무슨 일이든 빨리 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는 것이 더 빠른 길이라는 것이다. ‘우문현답’.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다. 주민과 우리, 행정. 그 관계 속에 원인도 있고 대답도 있다. 


마지막으로 도시재생 담당 공무원분들. 도시재생은 민원과 감사의 대상이다. 어떻게 보면 공무원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종류의 업무일 수도 있다. 분명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잠들기 전에 그래도 보람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 있지 않나? 일하며 공연히 웃어본 일도 있을 거라 믿는다. 모두에게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도시재생, 끝까지 파이팅!




글_정규영(빈빈)

사진_이예린(일오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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