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정석 교수_도시는 바꾸는 물건이 아니라 되살리는 생명

2021.07.26 3180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정석 교수

도시는 바꾸는 물건이 아니라 되살리는 생명  




북촌 한옥마을과 인사동, 암사동 서원마을 등 서울 곳곳을 연구하고 정책을 세우며 노후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은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정석 교수로부터 도시재생의 지난 성과와 앞으로의 방향을 물었다. 






도시재생 분야의 손꼽히는 연구자로 서울의 도시재생 사업 시작 단계부터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보통 서울의 도시재생을 2014년 창신·숭인지역 활성화 사업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는데, 사실 서울시 도시재생의 뿌리는 더 깊다. 나는 북촌 한옥마을 재생 사업을 그 시작으로 본다. 1990년대 말 종로구청이 북촌 한옥마을을 철거하고 재개발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서울시 관련 위원회에서 그 계획을 아슬아슬하게 부결시켰다. 당시 고건 서울시장이 내가 일하던 서울연구원에 한옥마을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의뢰했다. 2000년 한 해 동안 극심한 갈등이 있었다. 반대하는 주민들 때문에 설명회가 무산되기까지 했다. 서울시가 싼값에 한옥을 매입하려 한다고 오해하는 주민들도 많았다. 당시 연구 책임자이던 나는 고민 끝에 북촌 주민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고안했다. 그것이 한옥 등록제였다. 한옥을 서울시에 등록하면 개·보수할 때 비용 일부를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2001년 7월 시행 이후 많은 한옥이 현대화되었고, 골목도 깔끔하게 정비했다. 서울시가 매입한 한옥은 정비되어 지금도 공공 공간으로 쓰임을 다하고 있다. 그때는 북촌 가꾸기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지금이라면 북촌 도시재생이라고 했을 것이다. 



북촌 한옥마을은 노후된 저층주거지가 대부분인 서울시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과는 조건이 크게 다르다

한옥마을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북촌 가꾸기 사업이 제법 자리 잡은 2007년 무렵 당시 서울시 진희선 부시장의 주도로 저층 주택이 모여 있는 지역들도 북촌 한옥마을처럼 재개발이 아닌 도시재생 방식으로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살마지 계획’이 시작되었다.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형 ‘지’구 단위 계획이라는 뜻의 이름이었다. 서울의 모든 25개 자치구를 대상으로 공모한 결과 18개 구가 참여했고, 최종적으로 암사동 서원마을과 성북동 선유골, 우이동 능안골 등 세 곳이 대상지로 지정되었다. 2009년 당시 오세훈 시장이 대규모 ‘뉴타운’ 사업과 반대되는 개념을 부각시키기 위해 살마지 계획을 ‘휴먼타운’이라는 이름으로 바꿨고, 다음 해 도시환경정비법이 개정되어 노후한 주택의 개보수를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로 도시 곳곳에서 주거환경관리사업이 일어났고, 2013년 도시재생 특별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정석 교수는 서울연구원에서 일하던 2000년부터 북촌 가꾸기 연구 프로젝트를 총괄하며 

서울의 도시재생 정책 수립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서울 도시재생의 맥락이 한눈에 보이는 듯하다. 2014년 창신·숭인을 시작으로 8개 지역에서 진행한 도시재생 1단계 마중물 사업이 마무리되었다. 이들 사업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떤 것을 남겼다고 생각하는가? 

가장 큰 의미는 새로운 대안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몽땅 허물고 재개발하는 과거의 방식으로는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집과 길을 고치고 필요한 공간을 만들면서 주민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새로운 가능성과 길을 보여줬다는 것이 도시재생 1단계 마중물 사업의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하지만 도시재생이 과거의 재개발보다 더 나은 방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계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첫 단추를 잘 꿰었으니 그다음은 한결 더 수월해질 것이다.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도시재생 사업 실행에 있어 필요한 정책적, 제도적 개선점은 무엇일까?

재개발·재건축을 큰 수술에 비유한다면 도시재생은 작은 수술이나 물리치료, 자가치유 등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이 탈이 났을 때 배를 가르고 장기를 끄집어내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식으로 병을 고칠 수도 있지만 그런 큰 수술은 불가피할 때 선택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가능하다면 다른 방법으로 병을 고치고 회복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성과가 눈에 확연히 보이는 뉴타운 등 대규모 재개발·재건축과 달리 도시재생은 성과를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주관하는 국토부와 서울시가 가진 큰 딜레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기관은 성과를 내고 주민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니까. 재개발과 다른, 도시재생의 성과를 정교하게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 그 지표는 누구나 성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쉬워야 할 것이다.





정석 교수는 언론 기고와 저서, SNS 등을 통해 도시재생의 가치와 의미를 널리 알려왔다.




여전히 도시재생이 재개발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2013년 도시재생 특별법이 왜 생겼는지부터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2002년 부임한 이명박 서울시장이 청계천 복원과 함께 가장 역점을 둔 정책이 뉴타운 사업이었다. 왕십리, 길음, 은평 등에서 시작한 뉴타운 사업은 아파트 단지 규모이던 기존 재개발·재건축의 규모를 도시 규모로 키운 것이다. 그다음 치러진 2006년 지자체장 선거는 전국이 뉴타운 선거였다. 서울 자치구청장들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뉴타운을 만들 수 있는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려면 사업성이 받쳐 줘야 하는데 뉴타운으로 지정된 지역들 태반이 사업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이익보다 자기부담금이 크니 주민들도 찬성을 철회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곳이 성남 원도심과 부산 산복도로 일대였다. 뉴타운 공약으로 당선된 해당 지역 지자체장들과 국회의원들이 도시재생 특별법 제정에 앞장섰다. 도시재생은 뉴타운의 출구전략이었다. 그렇게 개발 시대에서 재생 시대로의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개발 시대와 재생 시대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지은 지 30년 넘은 5층 아파트를 보면 단지에 심은 나무가 아파트보다 더 키가 크다. 그런데 재개발을 하면 그 나무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베어진다. 마을을 남김없이 싹 없애고 새것으로 바꾼다. 도시와 마을을 물건처럼 보는 시각이다. 물건이 낡으면 버리고 다른 것으로 바꾸면 되니까. 하지만 도시재생은 작게는 내 집부터 시작해서 마을과 도시를 생명으로 보는 것이다. 가능하면 고쳐 쓰고, 채워 나가면서 삶을 보존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도시재생보다 ‘삶터 되살림’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재생해야 할 것은 도시만이 아니니까. 재생의 궁극적 목적은 터가 아닌 삶의 재생이다. 길을 만들고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삶을 돌보고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석 교수에게 도시재생은 ‘삶터 되살리기’다.

집 짓고 길 닦는 것보다 지역 주민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도시재생의 본질이다.




서울시가 개발과 정비를 중점으로 하는 2세대 도시재생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의 도시재생 방향에 대한 제언을 부탁한다

대규모 재개발·재건축은 가급적 지양하고 소규모로 고치고 채우며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서울 주택 가격이 오르는 근본 이유는 서울에 사람이 몰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급을 늘리는 건 뜨거운 시장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 불가피하게 공급을 늘리더라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산을 활용해 사회주택, 공공임대주택 등을 공급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서울 시내를 다녀보면 어디서나 ‘임대’ 현수막이 붙은 건물을 볼 수 있다. 현재 서울의 사무실 공실율은 15%가 넘는다. 빈집의 수도 적지 않다. 대규모 재개발은 불균형을 증폭시킬 뿐이다. 무심한 잉여와 절절한 결핍을 연결해야 한다. 2050 탄소 중립이라는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대규모 재개발은 더 이상 유효한 방식이 아니다. 도시를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글_정규영(빈빈)

사진_이예린(일오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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