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상희 교수 - 도시의 자생력을 위한 대학의 역할, 대학도시

2021.09.27 3186



도시의 자생력을 위한 대학의 역할, 대학도시



박상희(경희대 시각디자인학과 학과장)



임대되지 못한 임대건물을 문화로 채운 예술대학


1997년 한국 IMF 외환위기가 왔을 당시 임대되지 못한 임대건물들이 즐비했다. 학생들과 관광객들로 촘촘했던 홍대 앞도 외환위기를 피하지 못했다. 그 당시 필자는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에 재학중이었고, 12개 미술 단과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거리미술전의 영상팀장을 맡고 있었다. 거리미술전 멤버들은 매해 홍대 앞 거리미술전을 진행했고, 1997년 거리미술전을 마치고 텅 빈 홍대 앞 건물에 주목했다. 


왜 건물들이 비어있어야 할까

대학생들은 전시할 공간이 없는데, 

비어있는 공간에 대학생들이 들어가서 콘텐츠를 채우면 어떨까


홍대 삼거리 2층 통유리창에 ‘임대문의’가 붙여진 멋진 건물에 찾아가 한 달간 임대를 했다. 20년도 넘어서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무료였던지 매우 적은 임대료를 지불했던 것 같다. 1998년 ‘임대건물전’을 기획하고 실행했다. 쇼윈도우는 200여 마리의 금붕어로 채워졌고, 다양한 설치 미술과 마이미스트의 공연이 펼쳐졌다. 홍대 삼거리를 지나는 많은 이들이 참관했다. 이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으로 확장해 설치 미술과 마임전을 진행했다. 도시의 인프라와 대학의 콘텐츠가 적절하게 만나 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다. 이러한 구조가 지속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어떨까.




대학-지역사회 협력을 통한 도시재생


  

  

 

일본 가나자와구 나미끼 거점(출처 www.facebook.com/namiki.ycu)


2005년 일본 요코하마시는 대학도시 파트너십 협의회를 설립하고 시청 정책국 내에 대학조정과를 설치했다. 이를 통해 공간 시설 자원을 활용한 협력뿐만 아니라 캠퍼스타운 *가나자와를 통해 젊은 인재를 바탕으로 한 지역기업 활성화 사업, 지역마을만들기 실습 등을 추진했다. 또한, 2009년 마이 타운 가나자와 핫케이 프로젝트를 통해 빈 점포를 활용한 활동 거점을 마련하고 ‘학생-지역NPO-상가 공영회’가 협력해 가나자와핫케이역(金沢八景駅) 주변 상가를 활성화하기 위해 마을 만들기를 추진했다.


* 2008년 가나자와구청 주도하에 ‘대학이 있는 마을만들기’를 목표로 가나자와구 내에 위치한 시립대와 간토학원, 가나자와구청이 3자 협정을 체결하여, 대학생들의 아이디어 및 실행력을 바탕으로 마을 재생에 기여하기 위해 기획된 사업이다. 




서필라델피아 동쪽 대학도시(University City)라 불리는 지역 (Photo by Kelly Kiernan on Unsplash )



섬유 및 의류 산업의 메카였던 필라델피아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 변화에 따라 쇠락의 길을 걸었다. 유펜과 필라델피아시는 유펜의 대학 인력을 대학도시로 이동시키며 적극적인 환경 변화를 이끌었다. 대학의 공공성을 바탕으로 대학이 위치한 도시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자는 명분을 가지고 정부 투자 유치를 이끌었다. 그 결과 슬럼화되던 지역은 대학도시라는 정체성을 입고 세련된 도시로 탈바꿈했다. 서필라델피아는 1990년대 3만 달라였던 가구당 평균 수입이 2010년대에는 5만 달러로 증가하였으며, 2000년에서 2013년 사이 주택 가치 평균은 약 134% 증가하여 펜트리피케이션(Penntrification) 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문화를 통한 도시재생


프랑스 마르세유의 대규모 성냥공장은 산업구조가 탈바꿈함에 따라 지역 실업률 및 범죄율이 증가했지만 예술가, 예술단체, 지방정부, 지방의회, 지역공동체가 함께 도시재생을 추진하여 연 120만 명이 방문하는 도시가 되었다.




리버풀 비틀즈 동상 (Photo by Neil Martin on Unsplash)


영국 리버풀은 19세기까지 세계 물류의 40%가 통과하는 무역항이자 운하 및 철도가 개통되며 교통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그러나 산업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제 2차 세계대전 때 집중 포격을 당하면서 텅빈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 도시에 생명을 불어 넣어준 것이 록 밴드 비틀즈였다. 비틀즈를 매개로 한 음악산업으로 리버풀은 1조 5000억 원에 달하는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도시재생은 경제 활성화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커뮤니티 참여, 공론화 등 함께 만드는 문화도 중요하지만 결국 경제가 살아나지 못한다면 지속가능한 도시 생태계 구축은 불가능하다. 문화를 창조하는 가장 역동적인 계층이 도시 곳곳에 자리잡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민-관-학 구조가 시스템화된다면 도시재생은 지금보다 더 현실적인 방향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경제 활성화와 커뮤니티 참여라는 도시재생의 중요한 두 가지 방향성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개방성이 요구되는 대학


학교, 병원, 교도소는 구조가 같다는 이야기를 왕왕한다. 복도가 있고, 문이 굳게 닫힌 방들이 나열되어 있다. 병원과 교도소는 나름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폐쇄적일 수 밖에 없지만 학교라는 공간은 폐쇄적이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캠퍼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역사회와 구분된 담장보다는 지역사회와 하나가 될 수 있는 구조를 찾아보면 어떨까.


서울시에는 50여 개의 사립대학과 국공립대학이 있다. 65만 여명의 대학생이 있고, 연간 12만명이 졸업한다. 이 중에는 원도심에 위치한 대학도 많다. 많은 대학이 LINK+ 사업단을 통해 지역 연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더 적극적으로 대학과 도시재생을 아젠다로 삼는 대학도 있다. 





서울 캠퍼스타운 참여대학 현황(서울시)



서울 캠퍼스타운 페스티벌 2020



또한, 서울시는 청년, 대학, 지역의 상생성장 및 미래 가치 창출을 ‘대학도시 서울’이라는 비전으로 서울시 캠퍼스타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청년창업을 바탕으로 대학가 주변 상권과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서울소재 34개 대학이 서울 캠퍼스타운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까지 646개 창업팀을 지원하고 있으며, 2021년 내 1,000개 팀 창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410억 원의 사업비 투입 및 500여 개 창업팀 육성 계획을 세웠다. 광진구 광나루길 20에 있는 건국대 Ku 청년 창업 스튜디오, 서대문구 연세로2나길 61에 있는 연세대 거점공간 에스큐브 등 캠퍼스타운 창업 공간은 창업문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2020년 입주기업 투자유치액은 252억에 달한다.


대학은 도시개발의 주체로서, 또 지역사회의 파트너로서 기능할 수 있다. 대학가 주변이 상업 공간으로 활성화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간의 성격이 요식업뿐만 아니라 문화 플랫폼 등 다각화될 필요가 있다. 머무르는 시간을 증대하고 소비할 수 있는 장르를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생산과 소비의 주체에 대학-지역사회가 연계되어야 한다.




뉴욕대학



영국 대학도시 옥스포드 (Photo by Sandip Roy on Unsplash)



뉴욕과 런던에 있는 대학들은 도시와 잘 어우러져 있다. 도시의 상업건물과 단과대학 건물이 섞여 있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거대한 캠퍼스가 아니라 지역 곳곳에 파고들어가는 날을 상상해본다. 신림동, 상수동, 안암동, 이문동, 월곡동 등에 서울시 소재 대학들의 단과대학이 들어온다면, 예술대학의 졸업전시가 극장과 미술관이 아닌 지역사회의 빈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면, 지역의 빈집들을 연계하여 창업 공간을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까.



도시의 자생력, 대학도시


영국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곳, 그만큼 도시의 쇠락이 빠르게 찾아왔고, 그래서 도시재생이 제일 먼저 시작됐다. 영국이나 미국에는 도시와 대학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다. 도시와 대학이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문화적 인프라를 공유한다. 대학이 대학이라는 거대한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지역 문제를 같이 해결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학교의 연계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창의적이고 지속가능한 도시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


서울이 가진 다양한 문화예술 인프라에 인재가 정착할 수 있는 도시 플랫폼이 갖춰진다면, 그곳에 바로 도시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창의적 관료'란 도시가 가진 잠재력을 알아보고, 창의적으로 코디네이팅하는 것이다. 민간이 해야 하는 영역과 행정이 할 수밖에 없는 영역을 구분해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지원하고 연결하는 것이 도시를 도시답게 만드는 길이다. 


그 길에 도시의 자생력이 있다.


 





박상희 PROFILE

소속

경희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학과장(조교수)

학력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졸업

동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졸업

경력

전 인천광역시 소통기획담당관 브랜드전략팀장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가브랜드 개발추진단 사무국장

전 애경산업(주) 디자인센터 차장

전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 벤처1호 ㈜보라존 BI팀장


1999년부터 디자인 전문회사, 스타트업, 대기업, 지자체 등 다양한 기관에서 제품, 기업, 도시, 국가브랜딩 관련 실무를 진행했으며, 2005년부터 대학 강단에 섰다. 실무와 강의를 겸하며 현장만큼 설레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재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여러 기관과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또 다른 위치에서 두 가지 길을 함께 걷고 있다. 도시와 지역, 사람과 커뮤니티에 관심이 많고 그 안에서 대학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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