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인문학 강좌 '어반살롱'_이성범 건축가

2021.11.26 761





제15회, 도시재생 인문학 강좌 ‘어반살롱’


차근차근 천천히, 건축이 도시를 변화시키는 방법




서울도시재생 이야기관 시민 참여 프로그램 어반살롱. ‘흔적’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강연은 특별히 <걱정 말아요, 집수리> 전시가 열리는 사직동 주택에서 언택트 라이브 강연으로 진행되었다.  MBC 빈집 프로젝트, <빈집 살래>로 이름을 알린 건축가 이성범은 삶과 공간의 흔적을 재해석한 건축을 통해 다시 활기를 찾는 도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


<걱정 말아요, 집수리> 전시 개막일인 10월 21일, 지어진 지 40년 만에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된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사직동 주택에서 열다섯 번째 어반살롱이 열렸다. 앞서 인용한 문구는 90세 건축가 할아버지 츠바타 슈이치와 87세 할머니 츠바타 히데코, 둘이 합쳐 177살 노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을 ‘차근차근, 천천히’ 비추는 다큐멘터리 영화 <인생 후르츠>(2016)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는 내레이션. 어반살롱 ‘흔적’의 강연자인 건축가 이성범 소장이 최근 흥미롭게 본 영화라며 강연에 인용한 문구이기도 하다.

“<인생 후르츠>는 건축이나 도시 공간에 대해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의 삶, 그리고 살아가면서 맺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우리가 사는 집, 나아가 도시를 채우는 핵심 요소라는 사실을 조용히 역설합니다.”








이성범 건축가(포머티브 건축사 사무소)





사람이 집에서 남기는 흔적, 집이 도시에서 남기는 흔적

2019년 7월 첫 강연을 시작으로 매달 ‘서울도시재생이야기관’에서 열리던 어반살롱이 이달에는 <걱정 말아요, 집수리> 전시와 연계하여 전시공간인 사직동 주택에서 온라인 강의로 진행되었다. 이 고풍스러운 2층 벽돌집은 20세기 대표적인 한국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하여 1983년 완공된 주택. 2019년부터 비어 있던 집이다. 이러한 장소성을 가진 곳에서 MBC TV ‘빈집 재생 프로젝트’ 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건축가 이성범 소장(포머티브 건축사 사무소)이 강연자로 참여하여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되었다. 이성범 소장은 이번 강의의 제목을 ‘흔적’이라 명명했는데, 이 단어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집은 사람의 삶과 맞닿아 있는 공간입니다. 사람은 집이라는 공간을 점유하고 살아가며 많은 흔적을 남기지요. 그런 것들이 모여 사람다운 공간이 되어 갑니다. 한편으로 집 역시 도시의 공간을 점유하며 흔적을 남깁니다. 주거 공간으로서 집은 도시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니까요. 사람들의 삶과 집이 남기는 많은 흔적들을 다 없애고 새로 짓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 이런 문제의식으로 ‘흔적’이라는 주제를 정했습니다.”


 




 


15회차 어반살롱이 진행된 사직동 주택과 MBC '빈집 살래' 포스터 
 




                        



언택트 라이브 강연은 10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했다.






“도시개발처럼 도시재생도 속도를 강조해야 할까요?”

이성범 소장이 강연을 통해 가장 먼저 강조한 키워드는 ‘속도’였다. 20세기 한국은 ‘경제부흥’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정권이 바뀌는 5년이라는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성과를 이루기 위해 속도를 강조한 것. 직사각형으로 일제히 반듯하게 세워진 회색 아파트 단지가 가장 단적인 예일 것이다. 5개년 계획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 주거 공간을 획일화, 표준화한 것. “도시가 어느 정도 성숙하고 난 후, 최근에는 기존 재건축, 재개발과 다른 방식으로 도심 환경을 개선하는 도시재생이 등장했지만 그 역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에 5년은 너무나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시재생에서도 이전처럼 속도를 강조해야 할까요?” 이성범 소장은 올 4월 실시된 ‘안전속도 5030’을 빗대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보행자 중심 도시라는 흐름을 강조하기 위해 자동차의 속도를 늦추자 도시 공간이 훨씬 더 다양하고 폭넓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속도를 늦추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이 도시를 점유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풍성한 이야기를 지닌 제대로 된 도시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들을 내포한 집들이 모이면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갈 수 있다."





속도를 맞추기 위해 우리 도시는 이제껏 많은 것을 포기해왔다. 획일화된 아파트 평면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담기에 역부족이고, 이웃과의 소통과 상호작용이 일어나기도 어려운 공간이다.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면 바로 집으로 들어갈 수 있고, 키보다 높은 담으로 외부 사람의 출입을 차단한 그들만의 공간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외로운 존재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도시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를 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자동차 통행 속도를 늦추는 것처럼, 집을 짓는 데 충분한 시간을 들여 사람의 삶이 담기고 소통과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한 공간을 완성한다면 그 집들이 모여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이성범 건축가가 작업한 리노베이션 공간>


  


MBC '빈집 살래'를 통해 리노베이션한 종로구 신영동 주택.

장기간 방치되어 있는 빈집을 서울시와 SH공사가 사회주택으로 공급하는

프로젝트의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계동 최소아과를 리모베이션한 식음공간, 이잌.

안과 밖의 경계를 흐리게 하여 건축과 마을에 연속성을 부여했다.

덕분에 새로운 활력을 얻은 계동 골목에 사람들이 모인다.







 


제주 돌집을 리노베이션한 게스트하우스 월정담.

제주의 문화유산 돌담을 디자인적 요소로 풀어낸 재생건축으로 내외부에 배치된

돌담이 건축과 골목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






공들여 짓고 수리한 집으로 도시에 활기를

이를 증명하듯 이성범 소장은 삶과 공간이 남긴 흔적을 새롭게 재해석한 자신의 대표적인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MBC TV 프로그램 <빈집 살래>를 통해 재생한 종로구 신영동 빈집, 비어 있던 건물을 동네의 랜드마크이자 커뮤니티 공간으로 새롭게 해석한 계동 최소아과 건물, 건물 외벽을 허물고 투명한 유리로 덮은 광주 산수동 ‘쿠폴리’ 등 다양한 사례를 이야기해주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외벽을 걷어내 제주 돌집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올레길을 돌담과 연결해 실내외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제주 돌집이 인상적이었다. 정해진 속도나 비용이 아닌,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지역 정체성에 따라 공들여 지은 건물이 소통의 매개체가 되고, 주변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살고 싶은 도시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공들여 짓고 수리한 각자의 공간을 통해 그 생각을 담고, 서로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사는 도시는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90여 분간의 긴 강연이었지만, 모집 인원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여 마지막까지 이성범 소장의 강연에 뜨겁게 호응했다. 참여한 시민들의 반응을 살피며 강연을 이끈 모더레이터 김경서 대표(아트버스킹)는 강연 중 이성범 소장이 인용한 영화 <인생 후르츠>의 내레이션을 응용한 소감으로 오늘의 강의를 명쾌하게 정리했다.
“공간이 열리면 만나게 되고, 만나면 마음을 나누게 되고, 마음을 나누면 우리가 원하는 도시로 재생해 나갈 수 있다.”




어반살롱은…
서울도시재생이야기관의 시민 참여 프로그램으로, 전문가의 이야기를 통해 도시와 도시재생의 다양한 담론과 영감을 시민과 공유하는 인문학 강좌이다. 로컬 크리에이터, 기획자, 디자이너, 건축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도시와 도시재생을 개발과 건축, 부동산 등 물리적, 경제적 관점을 넘어 인문과 사회, 예술, 문화경제, 환경 등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서울도시재생이야기관 바로가기)





글_정규영(빈빈)
사진_이현실(일오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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