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예장공원을 걷다_"아픈 역사의 길을 자연과 미래가 있는 길로"

2021.07.27 731

 




남산예장공원

'아픈  역사의  길'을   '자연과  미래가 있는 길'로





지난 6월 9일, 남산예장공원이 정식 개장했다.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시절 침략과 인권 유린의 현장으로 훼손되며 출입이 통제되던 이곳은 남산 일대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115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여름 더위를 식히는 비가 내리던 오후, 남산예장공원을 걸었다.






여느 곳에 자리했다면 뒷동산이나 야산이었을 정도로 야트막하지만(해발 262m) 남산은 참 특별한 산이다. 한양이 조선의 도읍이 된 이래 600년 수도의 한 축을 담당하며 나라의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공간이자 선비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벗 삼아 인격을 수양하는 곳이었으며 군사적 방어의 요충지였다. 한양의 랜드마크로서 영광을 누리던 남산은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 시절 침략과 공포 정치의 현장으로 의미가 훼손되기도 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골짜기와 너른 평지가 있어 사대부들이 자택과 정자를 마련하고, 군사들의 무예훈련장(예장)이 자리하던 남산 북쪽 예장자락은 근·현대 남산의 아픈 역사를 상징하는 곳이다. 경술국치일인 1910년 8월 22일, 이곳에 설치한 통감부 청사에서 데라우치와 이완용이 강제 병합조약에 도장을 찍었고, 주변엔 대규모 일본인 거주지를 조성했다. 1960~70년대 군사독재 시절엔 고문 수사로 악명 높던 중앙정보부가 있어 일반 시민의 접근이 차단되었다.






남산예장공원의 입구인 들머리




서울시가 2009년부터 ‘남산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장충·한남·회현·예장 네 자락을 중심으로 한 남산 일대 재생 사업이 지난 6월 9일 남산예장공원 정식 개장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1906년 이곳에 통감부 청사가 건립된 후 115년 만에 남산 예장자락이 시민에게 돌아온 것. 경관을 가리던 건물을 철거한 광화문 광장 2배 규모인 3,950평 부지에 녹지공원을 조성하고, 공원 하부에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 선생의 기념관과 친환경 버스환승센터를 마련했다.



#들머리와 남산 하늘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남산예장공원을 찾는 길은 두 가지다. 1번 출구 반대편 언덕길을 오른 후 길을 건너 상부 녹지공원으로 바로 진입하는 방법과 10번 출구에서 이화빌딩까지 걸은 후 길을 건너 공원 입구인 들머리를 통해 보행 터널을 거쳐 공원 하부로 들어가는 방법. 남산1호터널 입구 지하차도를 보행 전용로로 바꾼 보행 터널을 지나 공원으로 진입하는 두 번째 방법이 의미도 있고 경관도 좋지만, 1번 출구로 나오는 길에 비해 다소 돌아가야 하는 건 아쉽다.

보행 터널을 거쳐 공원 하부로 들어가기 전에는 긴 호(弧)를 그리며 천장이 뚫려 있어 남산의 하늘과 소나무를 바라볼 수 있는 공간 ‘남산 하늘’이 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예전에는 걸어서 올 수 없는 공간, 볼 수 없는 풍경이었으리라. 남산 하늘은 텅 비어 있기에 더욱 특별한 감흥을 선사한다.







보행 터널을 거쳐 공원 하부로 들어가는 길에서는 남산 하늘과 소나무를 볼 수 있다.
 



#오솔길과 기억의 터
공원 하부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통해 상부 녹지공원으로 진입하면 소나무 숲 사이로 나무 데크를 깔아 조성한 산책로인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오솔길’로 이어진다. 아직은 받침목에 의지하는 어린 소나무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애국가 속 ‘남산 위의 저 소나무’처럼 늠름하고 무성해질 것이다.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산속 구름다리가 나오고, 횡단보도를 건너면 ‘기억의 터’와 바로 연결된다.


경술국치의 현장인 통감부 청사 터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는 쉼터를 조성한 공간이다. 1만 9,754명의 모금으로 조성한 공간에는 슬픈 역사를 기억하고 화해하고 치유하는 의미를 담은 여러 조형물과 이곳이 통감관저 터임을 알리는 비석이 자리한다. 이곳에서 출발해 남산 둘레길을 따라 위안부 기림비까지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둘러보는 ‘기억의 길’ 행사가 8월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6시부터 진행되니 참고할 것.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오솔길




기억의 터








#기억 6와 유구터
다시 공원으로 돌아와 천천히 전체를 둘러본다. 에스컬레이터 건물 뒤편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북쪽 방향으로 명동 일대 풍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포토존으로도 인기 있을 공간으로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 그 반대편으로 공원 전체를 조망할 수도 있다. 서울시는 남산예장공원에 남산 고유 수종인 소나무를 비롯해 18종 교목 1,642주, 사철나무 외 관목 31종 6만 2,033주 등 다양한 식물을 심었다. 기억의 터와 연결되는 오솔길 옆에는 수변 공원 ‘샛자락 쉼터’를 조성해 시원한 분수를 바라보며 지친 다리를 쉴 수 있게 했다.






샛자락 쉼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





거대한 붉은색 우체통 모양으로 솟아 푸른 녹지와 대비되며 시선을 집중시키는 건물의 이름은 ‘기억 6’다. 군사정권 시절 불법 연행과 고문 등 각종 인권 유린을 자행하던 중앙정보부 6국이 있던 자리에 지어져 과거 인권 침해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한쪽 벽에 당시 중앙정보부 직원의 이야기를 가상으로 재현한 영상이 나오고, 다른 쪽 벽에는 피해자들의 절규를 형상화한 글귀가 흐른다. 입구 반대편 난간 너머 아래쪽으로 보이는 좁은 사무실에는 인권 유린의 현장이던 취조실을 당시 모습 그대로 재현했다. 기억 6의 운영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공휴일은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다. 월요일과 설날, 추석에는 휴관한다.



건물 바깥에는 중앙정보부 6국을 철거한 잔해로 만든 벤치와 조형물이 있고, 그 옆으로 공원 조성과정에서 발굴한 조선총독부 관사터 기초 일부를 그대로 보존해 놓은 유구터를 만들어 놓았다. 묻히거나 숨겨져 있던 아픈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 열린 공간에서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일, 더 나은 역사를 향한 첫걸음일 것이다.






유구터
 





기억 6
 




기억 6 내부에는 과거 중앙정보부 6국 취조실이 재현되어 있다.





#이회영기념관과 친환경 버스환승센터
엘리베이터 또는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다시 공원 하부로 향한다. 마치 로비처럼 넓게 펼쳐진 공간인 예장마당의 천장엔 수많은 작은 기둥이 매달려 있다. 청산리·봉오동 전투의 주축이었던 신흥무관학교 학생 3,300명을 기리는 테라코타 조형물이다.



예장마당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을 기리는 이회영기념관과 바로 이어진다. 상설전 ‘봉오동으로 가자, 청산리가 되자’를 통해 전 재산을 들여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무기를 사들여 독립운동을 후원한 그의 일대기를 유품과 다양한 자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선생을 비롯한 이회영 선생 6형제의 일대기와 그의 아내 이은숙 여사의 회고를 통해 독립운동부터 광복까지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예장마당



이회영기념관








이회영기념관과 함께 남산예장공원 하부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이 친환경버스 환승센터다. 명동과 남산을 찾는 단체 관광객을 태운 관광버스를 이곳에 세우고, 남산을 오르는 친환경 녹색순환버스로 갈아탈 수 있도록 하는 공간. 승용차는 이곳 친환경버스 환승센터에 주차할 수 없다. 현재는 녹색순환버스만 왕래하지만, 코로나 이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 활기를 띠기를 기대한다.






친환경버스 환승센터




남산예장공원은 자가용을 통해 이용하기에 불편한 공간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대중교통을 타고 와 직접 걸어보면 남산예장공원의 가치를 100% 체험할 수 있다. 어두운 역사의 현장을 푸르른 쉼터로 바꿔 놓은 것만큼이나 서울의 중심인 명동과 남산의 자연을 도보로 연결해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남산예장공원은 도시재생의 관점에서도 의미가 큰 공간이다. 이곳을 거쳐 남산공원과 남산둘레길, 한옥마을 등을 둘러보기도 좋다. 115년간 가지 못했던 공간, 볼 수 없었던 풍경이 되살아났다. 600년 수도 서울의 랜드마크 남산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만끽하시기를.




글_정규영(빈빈)
사진_류주엽(일오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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